시의 이해, 민음사, 1983
그 사람은 이상과 현실을 너무도 혼동하고 있소. 어느 현대시인은 우둔하기가 '행동과 꿈이 자매지간이 아님'을 슬퍼할 정도였지. 그 사람도 그 점을 애석해 하는 부류에 속하오. 맙소사, 이치가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꿈이 그렇게 시들고 꺾이었다면, 이 땅이 지긋지긋하기만 하고 안식처라고는 오직 꿈밖에 가지지 못한 우리들 불행한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구원을 얻는단 말이요. 친구여, 갈증은 이상의 샘물로 푸시오. 이땅의 행복이란 천박할 것이, 그걸 긁어모으자면 자연 손에 더덕더덕 굳은 살이 박일 수밖에 업소.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나는 비겁하다'거나 그보다 흔한 경우에는 '나는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지. 그 이유는 행복하려면 행복이라는 낮은 천장 위에 높이 드리운 이상의 하늘을 쳐다봐서는 안되며 아니면 의식적으로 눈을 감아 버리든가 해야 하기 때문이요. 「창문」이라는 내 조그만 시는 그런 생각에서 만든 것이요.
ㅡ 까잘리스에게, 1863. 6. 3
창
슬픈 병원이 지겨워, 빈 벽의 크고 권태로운 십자가를 향해
휘장의 진부한 백색을 타고 피어오르는
역겨운 향내음이 지겨워,
딴 마음을 먹는 빈사의 병자는 늙은 등을 다시 세우고,
저를 끌어가, 그 썩은 몸을 덥히려는 게 아니라
돌 위에 떨어지는 햇빛을 보려고,
앙상한 얼굴의 하얀 털과 뼈를
맑고 고운 광선이 검게 태우려는 창에 붙이니,
열에 들떠, 푸른 하늘을 탐식하는 그의 입은,
젊은 날, 그의 보물, 왕년의
어느 순결한 피부를 마시려 들었을 때처럼!
쓰디쓴 긴 입맞춤으로 금빛 미지근한 유리창을 더럽힌다.
취하여, 그는 살아난다, 聖油의 끔찍함도,
탕약도, 시계와 강요된 침대도,
기침도 잊고, 저녁 해가 기와지붕 사이에서 피를 흘릴 때,
빛살 가득한 지평선에 그는 눈길을
보내니, 백조처럼 아름다운 금빛 갤리선들,
얼기설기 풍요로운 황갈색 섬광일랑은
추억에 잠겨 태무심하게 흔들어 재우며,
주홍빛에 싸여 갯내음 풍기는 강 위에 잠드네!
이렇게, 행복 속에 파묻혀 오직 그 식욕으로만
밥을 먹고, 아등바등 오물을 찾아
제 어린 젖 먹이는 아내에게 바치려는
모진 마음의 인간에게 역겨움 지울 수 없어,
나는 도망친다, 그리고 누구나 삶에 등을 돌리는
모든 창에 매달리고 싶다, 그리고 축복을 받아,
무한의 순결한 아침이 금빛으로 물들이고,
영원한 이슬로 씻긴, 그 창유리에
나를 비추니 나는 천사이어라! 그리고 나는 죽으니,
ㅡ 그 유리가 예술이건, 신비로움이건 ㅡ
내 꿈을 왕관으로 쓰고, 다시 태어나고 싶다,
美가 꽃피는 전생의 하늘에!
그러나, 오호라! 이 세상이 주인: 고착된 이 생각
때로는 이 확실한 피난처에까지 찾아와 내 속을 뒤집고,
어리석음의 더러운 구토가
창공을 앞에 두고도 코를 막도록 나를 몰아대는구나.
그래 있는가, 오 쓰라림을 아는 나여,
괴수에게 모욕받은 수정을 부수고
깃털 없는 나의 두 날개로 도망칠 방법이?
ㅡ영원토록 추락하는 한이 있어도.
황현산 옮김, 『시집』, 문학과지성사, p.5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