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옮겨적은육지/詩의 理解

스테판 말라르메, 에로디아드

시의 이해, 민음사, 1983



무시무시한 한 해였소. 나의 생각은 절로 생각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하나의 순수개념에 도달했으니 말이요. 임종의 고통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동안 그 여파로 내 존재가 참고 견디어낸 그 모든 것은 그야 무어라 형언할 수 없으니 여하튼 내 자아가 완벽하게 소멸된 것만은 다행이었소. 그리고 내 혼백이 모험할 수 있는 가장 불순한 지대는 바로 영겁이라오. 그 고유의 순결성으로 항시 고독하며, 이제는 시간의 그림자마저도 어둡게 할 수 없는 내 혼백이 말이요.


불행이라고 한다면 내가 거기에 이른 것이 무시무시한 감수성을 통한 것이라는 점이요. 이제는 그걸 외부의 무관심으로 감쌀 차례지요. 그것이 탈진한 내 기력을 대신해 줄 테니까. 무척이나 힘든 종합의 노력끝에 이제야 겨우 이정도라도 원기를 회복한 셈이요 ㅡ 보다시피 쉴 수가 없지 않소. 그래도 지금은 나은 편입니다. 그 늙고 심술궂은 날개깃털과 싸우던 때에 비하면 말입니다. 진 편은 다행스럽게도 神이었소. 하지만 그 싸움이라는 것이 벌어진 전쟁터가 억센 뼈마디를 가진 그 놈의 날개 위였소. 그래 그 날개는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끈질긴 단말마를 지르며 나를 어둠의 나락 속으로 싣고 갔지요. 그래 승리를 거둔 나도 정신없이 그리고 한없이 떨어졌습니다. ㅡ 마침내 어느 날, 베니스의 거울 속에서 몇달 전 내가 나를 잊어버리던 그 순간의 내 모습을 다시 볼 때까지 줄곧. 게다가, 이건 당신에게만 하는 소린데, 사고하려면 나는 아직도 이 거울을 들여다보아야 할 노릇이, 지금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탁상 위에 이 거울이 없다고 한다면 나는 또다시 無로 化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죠. 그토록 내 승리의 '반대급부인' 핍박은 가혹하였소. 무슨 뜻이냐 하면 비인칭 impersonnel이 된 나는 이제 당신이 전에 알던 스테판이 아니라, 과거의 내 자아를 통하여 자신을 보고 자신을 펼쳐 가는 영적우주가 수렴하고 있는 일개의 適性 aptitude이 되었다는 사실을 당신에게 알리자는 뜻이오.


땅 위에 출현한 현세의 나란 허약하기 그지없으니 나로서는 오직 우주가 나 안에서 저를 되찾기에 꼭 필요한 전개만을 감당할 수밖에 없소. 그래서 나는 방금 종합의 순간에 그 전개의 모습만을 보여줄 것으로 창작을 제한하고 난 참이요. 그래 나올 것이 세 편의 시. 그 중 「에로디아드」가 서곡인 셈이요. 이 서곡은 그러나 인간이 이제껏 범하지 못한, 어쩌면 누구도 영원히 접하지 못할 그런 순결성을 간직할 것이요. 이유인 즉 나 자신도 어쩌면 착각의 노리개감에 불과할 수도 있겠고 또 인간이라는 기계 자체가 그 정도의 성과를 이룩할 만큼 그렇게 완벽한 것이냐 하는 것도 의문이기 때문이요. 그리고 또 하나는 無의 영적개념에 관한 네 편의 산문시. 그러려면 10년은 필요할텐데, 그렇게까지 살 수 있을는지......


나로서는 오랜동안 無 깊숙이 내려가 본 경험이 있어 단언하지만 그 밑에는 오직 아름다움이 있을 뿐이오. ㅡ 그리고 그 아름다움의 완벽한 표현은 하나 밖에 없소. 詩 뿐이요. 


                                                          ㅡ 까잘리스에게, 1867.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