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저녁들
롤랑 바르트, 소소한 사건들-현재의 소설:메모, 일기 그리고 사진, PHOTONET
난 지하철을 탄다. 마치 무슨 힘든 일이라도 하러 가는 것처럼. 본누벨 거리, 모든게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날씨는 차갑고, 인류는 늙다리처럼 무기력하고, 겉멋만 잔뜩 부린 지저분한 (의자에 지나치게 장식을 덕지덕지 붙인) 작은 식당들이 가득하고, 3류 영화나 포르노 영화 상영관만 잔뜩 있는 곳. 15분 일찍 도착했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어디 가서 커피 한 잔 마신대도 15분은 못 채울 거라는 생각에 (게다가 그 일대의 카페들은 너무도 후줄근했다) 대로를 따라 걸었다. 그런데 그게 핀터의 연극엔 치명적이었던 거다. 왜냐하면 걷다 보내 평소 내 걸음 속도로 시간을 맞춰 공연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 됐으니까. (실제로 여기엔 연관성이 전혀 없다) 난 플로르 카페에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일렀고, 만약 거기 간다면 저녁 시간이 너무 길게 늘어질 터였다.
영화관을 찾아보았다. 마음에 드는 영화가 하나도 없거나 이거다 싶은 영화는 이미 시작한 뒤였다. 그러다 보니 피알라 감독의, 대학입학 자격시험 치르는 또래의 십 대들을 주제로 한 영화가 상영 중이었다(J.-L.은 내게 이 영화를 아주 좋게 말했는데, 그 나름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즉 미학적 기준을 벗어나, 오직 그의 정적-지적인 느낌에 따른 관점에서는 그 얘기가 맞다). 영화는 한 순간 완벽하기도 했고 사람들이 좋다고 평가할 만한 근거도 있기는 했지만, 나로서는 보기 괴로웠다. 나는 사회적 '환경'의 사실적 묘사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일종의 '젊은'(젊음을 우대하는) 인종차별주의 같은 것이 있어다(나 같은 나이 든 관객은 절대적으로 배제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지나치게 이성애 중심적이다. 나는 (젊은이의 꽉 막힌 미래 전망 등등) 자리 잡지 못한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해야 하는 이런 식의, 시류를 타는 메시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리 잡지 못한 사람들의 세계 자체가 어리석다. 그런 사람들의 오만함, 그게 바로 이 시대다. 영화관에서 나와 오페라 극장 쪽으로 가다 보니 몇몇 떼거리를 지은 청년들이 있다. 한 소녀가 영화속에서처럼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과연 영화는 '진실'하다. 왜냐하면 거리에서도 저렇게 계속되니까. 생제르맹 대로에 이르니 드럭 스토어보다 조금 위쪽에서 아주 잘생긴 백인 놈팡이가 나를 멈춰 세운다. 나는 그의 수려한 외모, 섬세한 손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겁도 나고 피곤하기도 해서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핑계를 댄다. 플로르에서 내 옆에 라오스 인 두 사람이 앉는데 하는 너무 여자 같은 남자, 또 하나는 '남자'다운 면이 마음에 드는 녀석이다. 다정한 대화를 조금 나누었지만, 뭘 어쩌라고? (여전히 피곤하고, 나는 신문을 읽고 싶다.) 그들은 자리를 뜬다. 나는 두통 때문에 정신이 멍한 채 고통스럽게 집에 들어와 옵탈리돈 한 알을 먹고, 읽다 둔 <단테>를 계속 읽는다. P.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