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적은육지/윌리엄 포크너

윌리엄 포크너, 소리와 분노

흰운동화 2015. 7. 12. 02:18

윌리엄 포크너, <소리와 분노>, 문학동네. 2013

 

<소리와 분노>는 마음속에 떠오른 어떤 이미지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어떤 상징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집 옆의 배나무에 올라 할머니의 장례식이 벌어지는 방을 들여다보고, 나무 밑에 있는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말해주는 여자아이의 엉덩이에 흙이 묻어 있는 이미지였다. 그들이 누구며,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떻게 해서 속옷 엉덩이에 흙이 묻었는지 쓰고 나서 나는 단편소설로는 그 이야기를 다 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야 나는 흙 묻은 엉덩이의 상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사랑, 애정, 이해를 받지 못하고 집에서 탈출하는, 부모 없는 여자아이의 이미지로 대체되었다.

 

캐디는 퀜틴의 누이동생으로 두 살 어리다. 제이슨은 캐디보다 두 살 어리고 벤지는 제이슨과 한 살 터울의 막내다. 네 형제 중에서 캐디에게만 화자로서의 목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포크너는 형제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녀에게 접근한다. 그는 간접적인 접근이 더 "열정적"이라고 생각했다. "개울에 비친 그늘을 묘사하고 나무는 독자로 하여금 상상해서 창조하도록 하는 것이 더욱 감동적"이라는 것이다. 포크너는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 한 말은 그녀가 아름다우며 고양이눈처럼 밤눈이 밝았다"는 것뿐이라며, "사람마다 미의 기준이 다르므로, 그 미를 직접 묘사하지 않고, 그림자로 나무를 상상하게 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생각을 캐디에게 적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