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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차갑게 수축하기라도 하는 듯

흰운동화 2019. 10. 5. 12:24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열린책들, 2007

 

 

간밤에는 늦도록 모스끄바 퇴각 대목을 읽었다. 하원의 회의가 늦어질 때가 많다면서, 리처드는 그녀가 앓고 난 후이니 방해받지 않고 푹 잘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그녀도 모스크바 퇴각 대목을 읽는 편이 더 좋았다. 그렇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락방이 그녀의 침실이 되었다. 침대는 좁았고, 거기 누워 책을 읽노라면 ㅡ 그녀는 잠이 잘 오지 않는다 ㅡ 아이를 낳았는데도 여전한 처녀성이 새하얀 시트처럼 자신을 감싸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젊었을 때는 매력적이었건만, 갑자기 ㅡ 예를 들면 클리브덴 숲 가의 강에서처럼 ㅡ 마음이 차갑게 수축하기라도 하는 듯 그를 실망시키는 순간이 닥쳐 왔다. 그 후에는 콘스탄티노플에서도 그랬고, 그런 일이 거듭되었다. 무엇이 결여된 것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아름다움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었다. 무엇인가 중심에서부터 번져 나가는 것, 표면을 깨뜨리고 남녀의 차가운 접촉에 설렘을 일으키는 따뜻한 무엇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p.4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