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기호들 4 - 히파티아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2007
머나먼 고장을 여행하는 이는 생소한 언어에 직면하게 마련이지만 히파티아 시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언어적 변화와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도시에서 언어의 변화는 말이 아니라 사물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침 저는 히파티아에 들어갔습니다. 정원의 목련이 파란 석호(潟湖)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저는 그 호수에서 목욕 중인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관목 사이를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물속에서는 목에 돌을 매고 자살해서 머리카락에 초록 해초들이 뒤얽힌 여자들의 눈을 게들이 파먹고 있었습니다.
저는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술탄에게 처벌을 청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높은 돔들로 이루어진 왕궁의 반암(斑岩) 계단을 올라가서 타일이 깔려 있고 분수들이 물을 뿜는 여섯 개의 정원을 가로질렀습니다. 중앙 홀에는 철책이 둘러쳐져 있었습니다. 검은 쇠사슬에 발이 묶인 수형자들이 지하에 자리 잡은 채석장에서 현무암 덩어리들을 끌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철학자들에게 질문을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큰 도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양피지로 제본된 책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가고 있는 책꽂이 사이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저는 사라진 알파벳의 순서를 따라 복도를 이리저리 오가고 계단과 다리를 지났습니다. 제일 멀리 떨어져 있던, 파피루스 서적들을 넣어둔 방으로 들어서자 연기 구름 속에서 매트 위에 누워 있는 젊은이의 몽롱한 두 눈이 보였습니다. 그는 아편이 든 담뱃대를 입에서 떼지 않았습니다.
"현인은 어디 있나?"
아편쟁이는 창밖을 가리켰습니다. 창밖에는 나인핀스(ninepins)의 핀, 그네, 팽이 같은 어린아이들의 놀이 기구들이 있는 정원이 있었습니다. 철학자는 풀밭에 앉아 있었습니다.
"기호들이 언어를 형성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언어가 아니오."
저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제가 찾던 것들을 알려주었던 이미지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할 때만 제가 히파티아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말 울음소리 그리고 채찍으로 말을 때리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관능적인 전율이 저를 사로잡습니다. 히파티아에서는, 허벅지를 다 드러내놓고 각반으로 종아리를 덮은 채 말안장 위에 올라앉은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싶을 때, 마구간으로 들어갑니다. 낯선 젊은이가 다가가면 바로 그 순간 여인들이 그를 건초 더미 위에 혹은 톱밥 더미 위에 쓰러뜨리고 단단한 젖꼭지로 누를 겁니다.
그리고 제 영혼이 음악 이외의 다른 영양분이나 자극을 원하기 않을 때에는 묘지를 찾아가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연주자들은 무덤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무덤 여기저기에서 떨리는 듯한 피리 소리와 조화로운 하프 소리가 화답을 합니다.
물론 히파티아에서도 도시를 떠나는 게 제 유일한 바람이 되는 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저는 항구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요새에서 가장 높은 첨탑 위로 올라가서 배가 그 위로 지나가길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가 지나가기는 할까요? 속임수가 없는 언어는 없습니다. p.6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