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적은육지/마르셀 프루스트

그곳은 내게 너무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존재여서

흰운동화 2020. 2. 2. 18:46

마르셀 프루스트, 스완네 집 쪽으로1, 민음사

 

 

우리는 게르망트 쪽으로 산책할 때 한 번도 비본 내 수원지까지 거슬러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자주 그 수원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만, 그곳은 내게 너무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존재여서, 그 수원지가 같은 道내 콩브레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치 지구에 또다른 정확한 지점이 있어 고대에서는 그곳에 지옥 입구가 열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처럼 그저 놀랍기만 했다. 더욱이 우리는 한 번도 내가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산책 종점인 게르망트성까지 갈 수 없었다. 그곳에는 성주 게르망트 공작과 공작 부인이 살았으며, 그들이 실제 인물이며 현존한다는 것도 알았지만, 내가 그들을 떠올릴 때면 때로는 우리 성당에 걸린 '에스더의 대관식'에 나오는 게르망트 백작 부인처럼 장식 융단 속 인물이라 상상하거나, 때로는 성수를 찍으려고 할 때나 자리에 앉을 때 양배추의 초록빛에서 푸른 자두 빛으로 변하는 채색 유리 속 질베르 르 모베처럼 미묘한 분위기로 둘러싸인 인물이라 그려 보거나, 또 때로는 마술 환등기가 내 방 커튼 위로 돌아다니게 하고 천장 위로 올라가게도 하는 게르망트 가문 조상인 주느비에브 드 브라방의 이미지처럼 전혀 만질 수 없는 대상이라 상상했다. 말하자면 언제나 메로빙거 왕조 시대의 신비에 둘러싸여, '앙트(antes)'라는 음절에서 발산되는 오렌지 빛 석양에 잠긴 모습으로 그려 보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공작과 공작 부인으로 내게는 낯선 존재인데도 분명히 실제로 존재한 데 반해, 공작이라는 작위의 그 인물은 엄청나게 팽창하고 비물질화되어, 나는 그들을 공작과 공작 부인으로 만든 저 게르망트 가문을, 햇빛 찬란한 저 '게르망트 쪽' 모든 것을, 비본의 흐름을, 수련과 커다란 나무 들을, 그토록 아름다운 오후 한나절을 그 인물들 안에 가두었다. p.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