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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노생거 사원

어릴 적의 캐서린 몰런드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녀가 타고난 여주인공감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p.9

 

이런 신통찮은 후원을 받으며 작별이 이루어졌고 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은 그럭저럭 조용하고 아무 사건 없이 안전하게 진행되었다. 강도나 폭풍우가 들이닥친 적도 없고 뜻밖의 행운으로 남자 주인공을 소개받는 반전도 없었다. 그나마 놀랄 일이라고 해 봐야 앨런 부인이 여인숙에 자기의 나막신을 두고 온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한 정도인데, 그것도 다행히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p.18

 

그러니 그들이 대체로 늑대 심보를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고 그들의 계략으로 딸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의심 따위는 추호도 해 본 일이 없었다. 그저 이런 주의를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캐서린, 밤에 무도회장에서 나올 때는 늘 목을 따뜻하게 감싸도록 해라. 또 쓰는 돈에 대해서도 정리해 보도록 하고. 작은 장부를 줄 테니 그렇게 한번 해봐." p.17

 

그들은 드레스, 무도회, 남녀 사이의 집적거림, 이상한 사람이나 물건 같은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런 주제는 대게 부담 없이 이야기하다 보면 갑자기 친해진 젊은 숙녀들을 더 가깝게 해 주는 법이다. 그런데 소프 양은 몰런드 양보다 나이가 네 살 더 많아서 적어도 사 년 치 식견은 더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서도 확실히 유리했다. 그녀는 바스의 무도회를 턴브리지의 무도회와 비교할 수 있었고, 바스의 옷차림을 런던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옷차림에 대한 새 친구의 생각을 시정해 줄 수 있었고, 서로 미소만 주고받은 신사와 숙녀 사이에 밀고당김이 벌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고, 빽빽한 군중 가운데서 이상한 사람을 집어낼 수 있었다. 캐서린으로서는 생전 처음 접하는 능력이란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존경심이 일어서 오히려 친해지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소프 양이 서슴없이 쾌활하게 이렇게 그녀와 알게 된 기쁨을 자주 표현하여 경외의 감정은 누그러뜨리고 부드러운 애정만 남겨 놓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p.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