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페나크, 『몸의 일기』, 문학과지성사, 2015
16세 6개월 18일
자위 행위를 할 대 아주 절묘한 순간이 있다. 난 그걸 곡예의 단계라 부른다. 사정하기 바로 직전, 그러나 아직 사정을 하지는 않은 순간 말이다. 분출할 준비가 된 채 대기하고 있는 정액을 온 힘을 다해 억누르는 것이다. 귀두의 끝이 빨개지고, 귀두 자체가 엄청나게 부풀어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을 때, 음경을 손에서 놓아버린다. 음경이 떨리는 걸 내려다보면서 온 힘을 다해 정액을 붙들고 있다. 주먹을 꽉 쥐고,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고 있다 보면 내 몸도 함께 떨린다. 바로 이 순간이 곡예의 단계다. 감긴 눈꺼풀 뒤로 눈알이 뒤집히고, 숨이 가빠지는 그 순간, 자극적인 이미지들을ㅡ우리 여자 친구들의 젖가슴, 엉덩이, 넓적다리, 매끈한 피부ㅡ애써 좇아내다 보면, 분화구 바로 앞까지 다다른 정액도 녹아내리고 있는 기둥 속에 그냥 멈춰 있다. 그렇다. 폭발 직전의 화산을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용암이 도로 내려가버리도록 놔둬선 안 된다. 뭔가에 놀라게 되면, 가령 다마스 선생이 침실의 문을 연다든가 하면, 그땐 정말로 도로 내려가버린다. 그래선 안 된다. 정액에게 U턴을 시키는 건 건강에 아주 나쁘다는 걸 난 거의 확신한다. 정액이 다시 내려간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바로 엄지와 검지로 귀두의 끝을 감싸고 정액이 계속 끓어오르는 상태를 유지하도록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용암, 맞다, 아니면 수액이라고 할까. 그런 순간의 음경은 마디가 많은 곧은 가지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아, 아주 신중하고 또 정확해야 한다. 1밀리미터도 채 안 되는 차이가 결과를 좌우한다. 음경 전체가 극도로 민감해져 있어, 귀두 위로 숨만 한 번 훅 쉬어도, 혹은 이불이 살짝 닿기만 해도 폭발할 수 있을 정도다. 아직도 한 번, 두 번은 더 참을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매번 진정한 쾌감을 준다. 그러나 절대적 쾌감을 맛보는 건 바로 마지막으로 모든 걸 잃는 순간, 정액이 모두 솟아나와 손등 위로 뜨겁게 흘러내리는 순간이다. 아! 놀라운 승리! 그것 역시 묘사하기가 힘들다. 안에 들어 있던 모든 것이 바깥으로 나오고, 동시에 엄청난 쾌감이 우릴 삼켜버린다......이 분출은 동시게 삼키는 것이기도 하다! 용암이 불타고 있는 분화구 속으로 곡예사가 추락하는 것이다! 아! 그 어둠 속에서의 아찔한 눈부심! 에티엔은 그걸 '절정'이라 부른다. p.99-101
17세 2개월 17일
루소가 산책길에 식물채집을 했던 것처럼 나도 내 몸을 채집하고 싶다. 죽는 날까지, 그리고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그것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것이 되어도 좋겠지만 말이다. 어떤 직업을 갖느냐, 그건 또 다른 문제다. p.112
17세 5개월 11일
<사회계약론>을 읽으면서 자위를 하고 있는 날 보면 루소가 얼마나 깜짝 놀랄 텐가! 오호라, 정신과만 관련된 깜찍한 오르가슴. p.113
25세 3개월 14일
푸석푸석한 피부, 뾰족한 쇄골, 이두박근 뒤에 바로 만져지는 위팔뼈, 근육 덩어리인 가슴, 딱딱한 배, 까끌까끌한 음모, 내 손에 비해 너무 작고 앙상한 궁둥이. 한마디로 이 운동선수 같은 몸을 안고 있으면 영락없이 그와 정반대되는 몸을 원하게 된다. 더 딱한 건, 그녀의 몸을 즐기기 위해서 온갖 환상을 다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그러면 발기부전, 미심쩍은 변명, 음울한 밤, 아침의 찝집한 기분만이 남을 뿐이다. p.165
25세 3개월 22일
게다가 그녀의 냄새도 싫다. 난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냄새는 도저히 맡을 수가 없다. 사랑을 하면서 이보다 더한 비극은 없다. p.165
25세 3개월 25일
몽테뉴 : 여인의 가장 완벽한 냄새는 바로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고말고. 비올레트 아줌마, 어디 있어요? 아줌마 냄새가 바로 내 옷이었어요. 하지만 몽테뉴가 아줌마 얘길 한 건 아니겠죠. 쉬잔, 넌 어디 있니? 네 향기는 내 깃발이었는데. 그렇다고 몽테뉴가 네 얘기를 한 것도 아니겠지. p.165
52세 9개월 26일
티조와 함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옆 테이블에 앉은 미용사가 친구들에게 휴가를 떠난다고 알렸다. 그 말을 한 귀로 듣던 티조가 정색을 하고 심각하게 물었다. 머리카락은 계속해서 자라는데 미용사가 휴가를 가버린다는 건 좀 문제 있는 거 아냐, 그렇지? p.290
53세 2개월 16일
일본인 구로사와 감독의 「데르수 우잘라」를 봤다. 데르수가 툰드라를 배경으로 나타나는 순간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 섬세한 사냥꾼, 살아 있는 자연의 조각품, 묘한 매력을 풍기는 늙은이가 곧 시력을 잃게 될 것만 같았다. …… 확신과도 같은 내 예감은 시나리오의 허술함에서 기인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추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예닐곱 살 때의 어느 날, 난 내가 먼 곳을 못 본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그날, 난 데르수였다. p.300
60세 10개월 6일
새벽 1시인데, T빌딩 정원에서 누군가가 조약돌 위를 느릿느릿 서성이는 소리가 들린다. 모나는 내 옆에 잠들어 있다. 이 발소리도 지금껏 날 편안하게 해주는 소리들 중 하나이다. p.322